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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과 협력 프로그램, 참여해도 괜찮을까요?
대기업이 아이디어를 빼앗갈까 걱정되시나요? 오픈이노베이션의 구조를 이해하면 두려움 대신 전략이 보입니다.
Question.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스타트업 협력 프로그램에 참여하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아이디어를 빼앗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걱정이 돼요.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게 스타트업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나요?
오픈이노베이션이란 정확히 무엇일까요?
대기업이 외부의 스타트업과 협력하여 혁신을 추구하는 프로그램을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대기업이 신사업이나 사업 확장을 위한 혁신의 동력을 외부에서 확보하기 위해 진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오픈이노베이션의 방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투자형: 대기업의 CVC(Corporate Venture Capital)가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합니다. 앞서 #53에서 다룬 내용처럼, 전략적 시너지나 신사업 탐색의 목적으로 투자가 이루어집니다.
프로그램형: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선발하여 일정 기간 동안 지원금, 공간, 멘토링, 네트워크를 제공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삼성전자의 C랩(C-Lab Outside) 프로그램입니다. 선발되면 지원금과 공간을 제공하고, 투자 심사까지 연결됩니다. 웬만한 정부 지원 프로그램보다 훨씬 좋은 조건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흔한 걱정: "아이디어를 빼앗기지 않을까?"
이 걱정은 자연스럽습니다. 대기업에는 자본도 있고, 인력도 있고, 유통 채널도 있습니다. 우리의 아이디어를 듣고 나서 직접 만들어버리면, 작은 스타트업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아이디어만 빼앗가 가능성이 완전히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걱정은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아이디어와 실행은 다릅니다. 문제를 정의하고 아이디어를 발견해내는 능력은 분명 중요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솔루션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디테일이 계속 달라집니다. 고객과 부딪히면서 쌓이는 인사이트, 수백 번의 작은 의사결정, 팀의 실행력 — 이런 것들이 아이디어를 진짜 비즈니스로 만듭니다. 대기업이 아이디어를 가져간다고 해도, 이 디테일까지 가져갈 수는 없습니다.
대기업은 실행이 느립니다. 앞서 #53에서도 다뤘듯이, 대기업의 조직 구조는 빠른 실행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3개월 만에 프로덕트를 출시하고 고객 피드백을 반영하는 동안, 대기업은 기획안 승인을 받고 있을 수 있습니다.
Stefan Lindegaard(오픈이노베이션 전문가)는 이 우려에 대해 이렇게 조언합니다. "스타트업이 대기업과의 협력에서 아이디어 도용을 걱정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 걱정은 과도하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가져가 직접 실행하는 것보다,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인수하는 것이 비용과 시간 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다. 대기업이 협력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는, 내부에서 할 수 없는 것을 외부에서 가져오기 위해서다. 외부의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사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출처: Stefan Lindegaard, 『The Open Innovation Revolution: Essentials, Roadblocks, and Leadership Skills』, Wiley, 2010)
참여의 실질적 이점
아이디어 도용의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참여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실질적 이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자금과 공간. 삼성 C랩 같은 프로그램은 지원금과 작업 공간을 제공합니다. 초기 스타트업에게 이것만으로도 큰 도움입니다. 임대료 부담 없이 프로덕트 개발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대기업의 자원 접근. 대기업의 기술 인프라, 데이터, 유통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스타트업 혼자서는 얻기 어려운 자원입니다. 예를 들어, 대기업의 기존 고객 기반을 활용하여 파일럿 테스트를 할 수 있다면, 고객 확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투자 연결. 프로그램 자체가 투자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기업의 CVC가 프로그램 참여 스타트업에 우선적으로 투자를 검토합니다. 프로그램 기간 동안 성과를 보여주면, 별도의 IR 없이도 투자가 진행될 수 있습니다.
신뢰와 브랜딩. "삼성 C랩 출신", "현대자동차 제로원 선발" 같은 이력은 이후의 투자 유치나 파트너십에서 신뢰의 신호가 됩니다.
David Brinker(대기업-스타트업 협력 프로그램 연구자)는 효과적인 협력의 조건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력이 성공하려면, 양측의 기대가 명확하게 정렬되어야 한다. 스타트업은 자원과 시장 접근성을 원하고, 대기업은 혁신과 속도를 원한다. 이 교환이 투명하게 이루어질 때 양측 모두 이익을 얻는다. 문제는 기대가 불명확하거나, 한쪽이 일방적으로 가치를 취할 때 발생한다."
(출처: David Brinker, "Innovation Accounting for Corporate Startups", Harvard Business Review, 2019)
Tendayi Viki(전략적 혁신 컨설턴트)는 대기업 내부에서 스타트업과의 협력을 설계하는 관점에서 이렇게 조언합니다. "대기업이 스타트업과 진정으로 협력하려면, 단순히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스타트업의 속도와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 최고의 협력은 대기업이 스타트업에게 '우리처럼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스타트업이 잘하는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출처: Tendayi Viki, 『Pirates in the Navy: How Innovators Lead Transformation』, Unbound, 2020)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
모든 대기업 프로그램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참여 여부를 판단할 때 확인해야 할 것들을 정리합니다.
지분 조건을 확인하세요. 일부 프로그램은 참여 조건으로 지분을 요구합니다. 지분의 비율이 합리적인지, 우리에게 불리한 조건은 없는지 반드시 확인하세요.
우리의 비즈니스와 시너지가 있는지 판단하세요. 대기업의 주업과 우리의 비즈니스가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야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대기업 프로그램이니까"라는 이유만으로 참여하면, 시간만 빼앗기고 얻는 것이 없을 수 있습니다.
NDA(비밀유지계약)를 요청하세요. 아이디어 보호가 걱정된다면, 프로그램 참여 전에 NDA를 체결할 수 있는지 확인하세요. 대부분의 공식 프로그램은 NDA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졸업 기업들의 후기를 확인하세요. 이전에 참여한 스타트업들이 실제로 어떤 성과를 얻었는지가 가장 좋은 판단 기준입니다.
아이디어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정리하겠습니다. 대기업 협력 프로그램은 리스크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점이 리스크보다 큽니다. 특히 초기 스타트업에게는, 자금, 공간, 네트워크, 신뢰 —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얻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아이디어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속도에 집중하세요. 아이디어는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을 비즈니스로 만드는 과정에서의 디테일은 직접 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고객과 부딪히며 쌓아가는 경험과 실행력, 이것이 대기업이 결코 복제할 수 없는 여러분만의 자산입니다.
일단 도전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하나쯤 있으면 두려울 게 없는 든든한 내 편이 되어,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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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Stefan Lindegaard, 『The Open Innovation Revolution』, Wiley, 2010
- David Brinker, "Innovation Accounting for Corporate Startups", Harvard Business Review, 2019
- Tendayi Viki, 『Pirates in the Navy』, Unbound,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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